(스압/데이터주의)5.18 행방불명자들의 안타까운 사연(feat.만인보) 독서-일반

고은 시인의 대작 연작시 <만인보>에서는 5.18 민주화운동 관련 이야기가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전 30권, 4001편(!!!) 중에서 거의 4백 편(!!!)이 5.18을 다루고 있으니 말이지요... 27~30권은 대부분 '오월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희생자 이야기 나왔다가 유가족 이야기 나왔다가 구체적 인물이 아닌 그때의 사건을 묘사한 시가 나왔다가 잠깐 다른 이야기로 빠졌다가 다시 오월시 나왔다가...(그걸 다 읽어본 나도 참;;)
당연하지만 행방불명자를 다룬 시도 몇십 편이나 있습니다. 그걸 인용해볼게요. 우리 모두 잊지 말아야 할 일이기에..ㅠㅠ 저도 희생자 각각의 사연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가 이 작품을 읽으면서 큰 충격을 받았어요ㅠ.ㅠ 참혹한 묘사도 많거든요.
...그럼 시작합니다. 사실 유족 사연이 딸려있는 시도 있지만, 너무 길어지니까 생략.

1.정명귀

2.정경채

3. 장광식

4. 이철우

5. 이진현

6. 이정길

7. 이상복

8.유재성

9. 안운재

10. 신양균

11. 최종구

12. 김영찬(*다른 시들이 사람 이름을 제목으로 삼은 것과 달리, 이 시의 제목은 <그의 가계>입니다)

13. 채수길

14. 정인채

15. 정복남

16. 한강례

17. 변오연

18.박형철(시 제목은 <박형률 삼형제>

19. 박현숙

20. 박규현

21. 박갑용

22. 문미숙

23. 남영임

24. 김재영

26. 김양수(*시의 제목은 <그 형제>)

27. 김연임

28. 김성기

29. 김기운

30. 김광복(*이 시의 제목은 <김광복의 어머니>임)
31. 경순이
32. 권호영

32. 고재덕

33. 홍순권

아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통곡)
진짜 충격인 건 7살 아이와 10살 장애아 이야기네요!8ㅁ8
더 자세한 사연은 <꽃만 봐도 서럽고 그리운 날들>이라는 책을 참고하시면 좋습니다. 전4권인데, 1권이 바로 이 행불자 65명과 가족들의 사연이고 2~4권은 부상 후유증 사망자 376명의 이야기예요. 항쟁 당시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전2권)>의 후속편이죠.

여기까지 쓴 제 심정은...어..딱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담겨 있는 시로 마무리하죠-_- 제목은 <재학이 어머니>(https://twitter.com/518inManinbo/status/897289252068708352)

(세월호 이야기 아님!!!)자기 자식 죽었다고 남의 자식에게 피해를 주는 부모 이야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잡상

제목만 보면 오해하기 딱 좋게 써 있어서 미리 써두었는데요, 세월호 이야기 아닙니다. 전혀 아니에요.
실은 밑에 쓴 글처럼, 2ch 번역 블로그에서 황당한 상황을 담은 글을 봐서요;; 인용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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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 결정되고, 남편이 우리 부모님에게 인사하러 왔을 때, 이상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남편이 갑자기 얼굴을 굳히면서
「결혼 전에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나와 결혼하면, 따님이나 이쪽 집안에 이상한 사람이 오거나
수상한 전화가 올을지도 모릅니다.
정말로 죄송한 일입니다만」이라고 말했다.



학생시절, 부활동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친구 2명으로부터
『태풍이 오니까 바다를 보러 가자』 라고 권유받았지만(바다가 가까운 학교였다),
나는 혼자 자전거 통학이었으므로,
『바람도 심하고 비 내리기 전에 돌아가고 싶어, 너희들도 바보같은 짓 하지 말고 돌아가』하고
거절하고 곧바로 돌아갔다.

집에서 저녁밥을 먹을 때 드디어 태풍이 상륙했다고 뉴스에서 보았다.
다음날 학교에서 교사에게, 바다를 보러 갔다는 2명이 행방불명되었다고 들었다.
나중에 사체는 발견되었다.

그 뒤, 죽은 2명 가운데 한쪽 부모님이
「네가 둘을 막았다면 살아났을텐데.
바다를 보러간 것을 부모나 교사에 알려줬다면 살아났을텐데.
왜 너만 태평하게 살아있는 거야」
하고 나나 우리 부모님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 이래, 진학이나 취직할 때마다 그 부모님이 나타나서는, 학교나 사장에게
「저 새끼는 사람 두 명을 죽게 내버려두었던 악마」
라고 투서를 보내거나 직접적으로 와서는 떠들기도 했다.
한 번은 경찰에 넘겼지만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결혼해도 나타날지도 모른다,
고 하는 이야기였다.
그런 이야기를 할 때, 남편은 굉장히 지친 얼굴이었다.


실제로, 결혼하고 1년 뒤에 친정에 위에 쓴 것과 같은 전화가 걸려왔다고 들었다.

「아무리 혼내면서 길러도, 남자 아이는 바보 같은 짓을 할 때가 있다.
바보같은 짓을 한 아이가 모두 죽는 것은 아니다.
죽은 것은 ○○군(남편) 탓이 아니다.
당신 탓도, 죽은 자녀분 탓도 아니다」
하고 아버지가 말하자, 철컥 끊었다고 했다.
그 뒤로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 아들에게도, 태풍 때는 바다나 강에 가지 말라고 몇번이나 말하고 있다.
저런 부모가 되는 것은 싫다.





656: 무명씨@오픈 2014/10/14(화)14:40:42 ID:???
무서워요—
아이가 노려지지 않도록 조심하도록 해—

657: 무명씨@오픈 2014/10/14(화)15:14:09 ID:???
이미 원한의 덩어리구나
자신이라면 「너의 육아 방법 탓이잖아」라고 말해버릴 것 같구나
무서우니까 말하지 않겠지만

658: 무명씨@오픈 2014/10/14(화)15:58:29 ID:???
우리 현지에서도 파도에 떠내려가는 아이(대부분 고교생 남자)가
몇년에 한 번 나온다
그것도 잊었을 때마다
아이를 잃은 부모를 탓할 수는 없지만,
다른 아이를 탓하는 것은 번지 수가 틀렸지

655의 아버님의 말이 그 부모를 구해주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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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확실히 잘못된 일이다 싶긴 한데, 오죽했으면 누구를 원망하고 싶었을까 싶기도 하고...그러네요.
그런데 사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자연재해로 피해를 입거나 죽었다면(이 경우에는 자업자득인 면도 크지만;) 자연보다는 아무래도 구체적인 사람에게 원망을 쏟아내고 싶은 심정이 들기도 할 법하긴 합니다. 지난주 지진으로 수능 연기되자 애꿎은 포항 수험생들을 욕하는 악플이 달린다든가, 이재민들이 집은 부서졌는데 자연재해 피해라 전부는 보상을 못받고 최대 9백만원이 한계라고 하자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집에서 하룻밤만 자보라고 해요!'라면서 분통을 터뜨렸다는 이야기도 들었고요-_-;; 그리고 그걸 좋다고 받아써주는 언론들... 세월호 때와는 달리 정부가 잘못해서 고생하는 피해자처럼 아주 잘 포장해주고 계시네요! 하!

돈을 버느라 어쩔 수 없었다지만 자식을 사실상 방치한 부모, 그런 부모를 원망하는 자식. 잡상

실은 이런 글을 보게 되어서 꺼내는 말입니다...(봐야 이해되니 전문 인용할게요.)

151: 무명씨@오픈 2014/09/17(수)10:27:08 ID:pcrmdQnvM
나는 유료 노인 홈에서 일하고 있다.

입소자 분 가운데, 상냥하고 귀여운 느낌의 할머니가 있다.
가칭 A씨라고 해두겠지만, A씨에게는 외아들이 있고, 손자도 두 명.
홈에서 그렇게까지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지만, 아들은 일이 바빠서 일년에 몇 번 정도 밖에 면회하러 오지 않는다.
손자는 설날에만 세배돈을 받으러 온다.
A씨는 가족을 그리워하며, 면회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어서 그 모습을 보는 것이 괴롭다.

어느 날, A씨의 용태가 나빠져서 가족에게 연락했지만, 아들은
「구급반송한다면 의사확인서를 제출해뒀으니까 상관없다.
지금부터 중요한 회의가 있으니까 갈 수 없다」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생활상담원이
「아무튼 가족과 한 번 이야기하고 싶어하시니까」
라고 설득해서, 겨우 면회하러 와줬다.

나는 A씨의 케어를 위해서 수발들고 있어서, 아들이 왔을 때도 그 상황을 보고 있었다.
애타게 기다리던 자식의 얼굴을 본 A씨는, 줄줄 눈물을 흘리며
「나도 이제 남은 날이 길지 않아.
짧은 여생의 중요한 시간이니까 가끔씩은 얼굴을 보여 주지 않겠니.
손자도 보고 싶어」
라고, 비는 듯이 부탁하고 있었다.
생활상담원도,
「바쁜 것은 압니다만 친어머님이시고, 좀 더 면회하러 오시는 것이 어떨까요」
하고, 조금 설득하듯이 말했다.

152: 무명씨@오픈 2014/09/17(수)10:49:33 ID:pcrmdQnvM
그러자 아들은, 살짝 화가 난 것처럼 A씨를 향해서
「저기 말야, 어머니!」
라고 고함쳤다.

「내가 어렸을 때, 인플루엔자로 고열이 났을 때도 당신, 
내 머리맡에 물과 크림 빵만 놔두고 일하러 갔잖아!
초등학생 어린애가 혼자서 몇일이나 집을 보게 시켰잖아!
어머니와 함께 있고 싶다고 울며 부탁해도 모자가 함께 보냈던 날이 며칠이나 있었어!
생일이나 크리스마스에 약속을 잡고, 몇달이나 전부터 기대하고 있어도 
당신은 당일이 되면 중요한 일이 생겼다면서 나갔잖아!
노인의 앞날이 짧은 중요한 시간이라고 한다면 어릴 적의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는 거야!」

더욱 목소리를 높여서 큰 일이었지만, 이런 의미의 말로 아들은 고함을 쳤다.
A씨는 부들부들 떨며 울면서,
「너를 키우려고 필사적이었었어
너를 돈 때문에 고생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거야…」
라고 호소했지만, 아들은, 굉장히 차가운 얼굴로
「그렇구나. 나도 가족을 위해 필사적이야. 그러니까 시간이 없어.
경제적으로 고생하지 않았던 것은 감사하고 있어.
그러니까 나도 어머니를 돈을 들여서 훌륭한 홈에 들여보낸 거야.
이걸로 무승부지?」
이렇게 말하고, 생활상담원을 노려보며 떠나 버렸다.

그때부터, A씨는 아들이 보고 싶다, 손자가 보고 싶다고 말하는 일이 부쩍 줄어 들었다.
다만, 엄청나게 어두운 얼굴로 언제나 한숨 쉬고 있다.
지난번에,
「정말로 이제는 늦었지만, 
그 아이는 이런 마음으로 내가 돌아오길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고 
나이먹고 나서 생각해서 알게 되었어…
이제 돌이킬 수 없구나.
아들을 위해서 노력했는데 내 인생은 무엇이었던 걸까
이것은 인과응보인걸까?」
라는 말을 듣고,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생활상담원은,
「A씨가 그렇게 열심히 했기 때문에, 이 홈에 들어와서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거예요」
라고 위로하고 있지만.
(출처: http://storyis.blogspot.kr/2014/09/2ch_41.html)

휴우...참 비극이지요?ㅠㅠ
애가 혼자 있었다는 걸 보아 모자가정에, 어머니의 변명을 보면 형편까지 많이많이 어려웠던 집으로 보이지만...아들이 상처를 받은 건 엄연한 사실이고 돌이킬 수가 없죠ㅜㅜ 어릴 때 받은 상처는 평생을 가고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참고로 출처의 댓글란에는 
'A씨 입장에서 '조금 더 경제적으로 쪼들리더라도 아들이랑 같이 더 시간을 보내자' 라고 할만한 정신적 여유가 있을까가 문제죠.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 집이었으면 부모 입장에서 그걸 어쩌겠어요.'
'인심은 쌀독에서 나온다고..경제적으로 힘든 모자가정에서 엄마가 아이 옆에 오랜시간 함께 있다해도 즐겁게 놀아주거나 돌봐줄 수 없어요..당장 먹고살 일이 막막해서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니까.. 안타깝네요..ㅠ'
'안타깝긴 하지만 결국 자식이 저런 생각을 하게 만든건 온전히 부모인 자신이니 어쩔 수 없음'
'어느 쪽 마음도 짐작은 가지만, 초등학생을 며칠이나 혼자 둬야 할 정도로 바쁜 일이었던 걸까요? 고열이 난 아이한테 빵을 던져둬야 할 정도로 바빴더라면 대체 무슨일을 했길래 라는 생각이 먼저 드네요.'
등의 의견들이 있더라고요...

세월호...아직 못찾은 미수습자 가족분들이 결국 포기하시나 봅니다ㅠㅠ 잡상

목포신항을 떠나신대요.ㅠㅠ
미수습자 중 찾으신 분들이 마침내 모두 장례를 치르고 떠났는데, 이제 다시 겨울이라 수중수색 하기도 힘들고, 돈도 너무 많이 들고 국민들께 미안하다고...
아직도 남은 사람은 남학생 둘과 선생님 한 분, 일반인 부자인데요... 아이구 어떡합니까...찾지도 못하고 가슴에 묻게 되는 그 심정8ㅁ8 이제 사람들도 많이 떠났고 발길도 끊겼고...본인들도 너무 많이 지쳤다니ㅠㅠ
그리고 이번주 금요일에 위령제가 열리고 이별식도 치러진다고 합니다.ㅜㅜ

이제 바랄 수 있는 건, 그나마 세월호 사고의 진실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것밖에 없겠네요! 우선은 더 수월한 조사를 위해 선체를 똑바로 직립시킨다고 하니 그게 잘 되기를 바라야겠죠.

최순실 게이트 발발 1주년! 그동안을 돌아보며 우리 모두 축하합시다~ 잡상

이야~이번달 초부터는 그야말로 매일 매일이 1주년이었지요!
뭐 박-최 게이트 자체는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만, 아주 예전부터 진행되어 왔던 일들이 밝혀졌고 또 뿌리뽑히고 있으니, 그리고 '일단은' 일선에서 쫓겨났으니, 기념해야 할 만한 일....이겠지요?ㅠㅠ

사실 최순실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터진 게 10월 25일경부터지, 사실 그 전전주부터 이미 사태는 진행되고 있었죠. "이거 '최순실 게이트'라고 해도 될 수준이잖아!"라는 말이 나온 것도 그 열흘쯤 전이었고;; 미디어오늘의 정철운 기자가 쓴 <박근혜 무너지다>에서 정리한 타임라인을 인용하자면 이렇습니다.
10월 7일 금요일 - ‘#그런데최순실은?’의 시작과 다섯 번째 지지율 30% 붕괴 
10월 8일 토요일 - 새누리당의 증인 채택 육탄 방어, 사람들은 “최순실이 누구야?” 
10월 9일 일요일 - JTBC가 정유라의 훈련 일지 특혜 의혹을 공격하다 
10월 10일 월요일 - 백남기 농민 부검영장 발부되고, 김제동 씨 국감 출석을 요구하다 
10월 11일 화요일 - 나날이 확산되는 해시태그운동 
10월 12일 수요일 - 정유라의 이화여대 특혜가 수면 위로 부상, ‘흙수저’ 분노가 결합되다 
10월 13일 목요일 - 침묵으로 일관한 전경련, 털린 이화여대, 경향신문은 ‘최순실 게이트’라고 못 박았다 
10월 14일 금요일 - 박근혜는 최순실 게이트가 정윤회 문건 파동처럼 끝나길 원했다 
10월 15일 토요일 - 취임 후 최저 지지율 26%, 새누리당은 ‘송민순 회고록’을 꺼내들었다 
10월 16일 일요일 - 새누리당 종북몰이, 문재인을 ‘내통’이라고 공격하다 
10월 17일 월요일 - 청와대와 공영방송은 문재인 맹공, 손석희의 JTBC는 최순실 맹공 
10월 18일 화요일 - 점입가경 ‘정유라의 대학생활’,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독일을 추적했다 
10월 19일 수요일 - 드디어 SBS 개입, JTBC는 ‘연설문 수정’ 보도로 낚시를 하다 
10월 20일 목요일 - 대통령 해명에 KBS·MBC 늑장 보도 시작, 하지만 청와대 대변인은 아무것도 몰랐다 
10월 21일 금요일 - 모든 언론은 최순실을 찾아 독일로 떠나고, 조선일보는 JTBC 보도에 힘을 보탰다 
10월 22일 토요일 - 대기업 관계자들, 입을 열기 시작했다 
10월 23일 일요일 - 경찰은 백남기 부검영장 집행 못했고,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을 예고했다 
10월 24일 월요일 - 대통령이 ‘개헌’ 카드를 던졌으나, JTBC는 ‘최순실 태블릿PC’를 꺼냈다 
10월 25일 화요일 - 봇물 터진 국정농단 규탄, 대통령은 ‘멘붕’이었고 JTBC 시청률은 ‘폭발’했다 
10월 26일 수요일 - “부끄럽다” 

....그리고 29일부터 촛불집회가 시작되었고...그 결과는 지금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ㅠㅠ 참으로 감격스럽네요.

참고로 저 책, 아주아주 재밌습니다;; 주옥같은 말이 많아요.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이 총선을 전후로 연일 박근혜 정부를 비판해야만 했던 이유는 사실 뉴스 생산자로서 '생존'하기 위해셔였다. 그리고 운동장 바깥에 있는 광범위한 시민들을 의식한 이들 언론은 부분적으로라도 박근혜 정부에 결정적 타격을 날리며 의제 선점 지위를 유지하고자 했다. 이는 권력에 순치되어 언론의 기능을 상실한 공영방송 KBS, MBC와는 분명 다른 모습이다.'
'최순실 의혹이 여타 언론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상황에서도 공영방송은 요지부동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최순실, 정유라, 우병우, 박근혜에 쏠려 있을 때에도 공영방송은 오직 '북한'만 바라보고 있었다.'
'가장 마지막에, 누구 말마따나 '죽은 권력의 시체'를 물어뜯기 시작한 건 공영방송이었다.'
등등...아주 처절하게 지적을 하고 있거든요. 그외에 운명의 1년 전 그날에 대해서도
'개헌 카드는 속된 말로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기사는 나갔고, 나라는 뒤집혔다.'
''개헌 카드'는 단 하루 만에 쓰레기통으로 처박혔다. 이날 종합일간지 1면 머리기사 제목은 '최순실 충격'으로 가득했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손석희는 MBC 아나운서였다.(중략)
"그 뜨거웠던 한 달 동안 내가 한 일이라곤 화면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격렬한 공방전을 '구경'하는 것뿐이었다. 심야뉴스를 마치고 자정이 넘어 퇴근하는 길에 널려 있던 돌멩이와 병조각들, 그리고 그때까지 남아 숨을 막는 최루탄 냄새만이 내가 직접 느낀 팔십칠년의 유월이었다."
그는 당시 MBC 보도에 일종의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사력을 다해 제3자인 척했지만 돌멩이와 화염병은 우리를 향해 날아왔다. 우리에겐 방어 수단이 없었다. 모두가 알고 있는 꼭 한 가지의 방법이 있었지만 그것을 실천하기에는 용기가 부족했다. 그런 우리를 '87년 6월'은 용서하지 않았다."
30여년 뒤, 손석희는 언론인 중 가장 앞줄에서 박근혜 국정농단을 밝혀냈다. 손석희가 몸담고 있는 JTBC는 시민들로부터 가장 환영과 지지를 받는 방송사로 거듭났다. JTBC 기자들과 함께 공정방송을 이끌어낸 손석희의 '분투'가 없었다면, 박근혜와 최순실의 국정농단은 지금보다 덜 알려졌거나 늦게 알려졌을 것이다.
어느덧 예순을 넘긴 언론인 손석희의 '분투'는 어쩌면 30년 전 퇴근길에 널려 있던 돌멩이와 병조각들, 숨 막히는 최루탄 냄새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한때 시민들로부터 외면받았던 이 언론인은, 시간이 흘러 '모두가 알고 있는 꼭 한 가지의 방법'을 잊지 않고 정론 보도에 나서며 '87년 6월'에 용서를 구했다. 우리 사회에 아직 이런 언론인이 있다는 건 꽤나 멋지고 행복한 일이다.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그저 손석희의 JTBC 뉴스를 보면 되는 걸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말했다. "어떤 나라에서든 가장 중요한 직책은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직책은 시민인비다."
해시태그운동으로 언론을 깨워낸 시민이 제 목소리를 낼 때, 언론도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시민이 제 목소리를 낼 때, 우리는 신문지면과 방송화면에서 수많은 '손석희'들을 만날 수 있다. 수많은 '손석희'의 후예들은, 피의자 박근혜와 그를 둘러싼 한 줌의 무리들을 '아웃'시킬 것이다.]
등등;;; 이런, 너무 많이 인용했나요?(...)
저자분은 최근에는 <손석희 저널리즘>이라는 책을 내셨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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