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 발발 1주년! 그동안을 돌아보며 우리 모두 축하합시다~ 잡상

이야~이번달 초부터는 그야말로 매일 매일이 1주년이었지요!
뭐 박-최 게이트 자체는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만, 아주 예전부터 진행되어 왔던 일들이 밝혀졌고 또 뿌리뽑히고 있으니, 그리고 '일단은' 일선에서 쫓겨났으니, 기념해야 할 만한 일....이겠지요?ㅠㅠ

사실 최순실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터진 게 10월 25일경부터지, 사실 그 전전주부터 이미 사태는 진행되고 있었죠. "이거 '최순실 게이트'라고 해도 될 수준이잖아!"라는 말이 나온 것도 그 열흘쯤 전이었고;; 미디어오늘의 정철운 기자가 쓴 <박근혜 무너지다>에서 정리한 타임라인을 인용하자면 이렇습니다.
10월 7일 금요일 - ‘#그런데최순실은?’의 시작과 다섯 번째 지지율 30% 붕괴 
10월 8일 토요일 - 새누리당의 증인 채택 육탄 방어, 사람들은 “최순실이 누구야?” 
10월 9일 일요일 - JTBC가 정유라의 훈련 일지 특혜 의혹을 공격하다 
10월 10일 월요일 - 백남기 농민 부검영장 발부되고, 김제동 씨 국감 출석을 요구하다 
10월 11일 화요일 - 나날이 확산되는 해시태그운동 
10월 12일 수요일 - 정유라의 이화여대 특혜가 수면 위로 부상, ‘흙수저’ 분노가 결합되다 
10월 13일 목요일 - 침묵으로 일관한 전경련, 털린 이화여대, 경향신문은 ‘최순실 게이트’라고 못 박았다 
10월 14일 금요일 - 박근혜는 최순실 게이트가 정윤회 문건 파동처럼 끝나길 원했다 
10월 15일 토요일 - 취임 후 최저 지지율 26%, 새누리당은 ‘송민순 회고록’을 꺼내들었다 
10월 16일 일요일 - 새누리당 종북몰이, 문재인을 ‘내통’이라고 공격하다 
10월 17일 월요일 - 청와대와 공영방송은 문재인 맹공, 손석희의 JTBC는 최순실 맹공 
10월 18일 화요일 - 점입가경 ‘정유라의 대학생활’,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독일을 추적했다 
10월 19일 수요일 - 드디어 SBS 개입, JTBC는 ‘연설문 수정’ 보도로 낚시를 하다 
10월 20일 목요일 - 대통령 해명에 KBS·MBC 늑장 보도 시작, 하지만 청와대 대변인은 아무것도 몰랐다 
10월 21일 금요일 - 모든 언론은 최순실을 찾아 독일로 떠나고, 조선일보는 JTBC 보도에 힘을 보탰다 
10월 22일 토요일 - 대기업 관계자들, 입을 열기 시작했다 
10월 23일 일요일 - 경찰은 백남기 부검영장 집행 못했고,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을 예고했다 
10월 24일 월요일 - 대통령이 ‘개헌’ 카드를 던졌으나, JTBC는 ‘최순실 태블릿PC’를 꺼냈다 
10월 25일 화요일 - 봇물 터진 국정농단 규탄, 대통령은 ‘멘붕’이었고 JTBC 시청률은 ‘폭발’했다 
10월 26일 수요일 - “부끄럽다” 

....그리고 29일부터 촛불집회가 시작되었고...그 결과는 지금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ㅠㅠ 참으로 감격스럽네요.

참고로 저 책, 아주아주 재밌습니다;; 주옥같은 말이 많아요.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이 총선을 전후로 연일 박근혜 정부를 비판해야만 했던 이유는 사실 뉴스 생산자로서 '생존'하기 위해셔였다. 그리고 운동장 바깥에 있는 광범위한 시민들을 의식한 이들 언론은 부분적으로라도 박근혜 정부에 결정적 타격을 날리며 의제 선점 지위를 유지하고자 했다. 이는 권력에 순치되어 언론의 기능을 상실한 공영방송 KBS, MBC와는 분명 다른 모습이다.'
'최순실 의혹이 여타 언론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상황에서도 공영방송은 요지부동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최순실, 정유라, 우병우, 박근혜에 쏠려 있을 때에도 공영방송은 오직 '북한'만 바라보고 있었다.'
'가장 마지막에, 누구 말마따나 '죽은 권력의 시체'를 물어뜯기 시작한 건 공영방송이었다.'
등등...아주 처절하게 지적을 하고 있거든요. 그외에 운명의 1년 전 그날에 대해서도
'개헌 카드는 속된 말로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기사는 나갔고, 나라는 뒤집혔다.'
''개헌 카드'는 단 하루 만에 쓰레기통으로 처박혔다. 이날 종합일간지 1면 머리기사 제목은 '최순실 충격'으로 가득했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손석희는 MBC 아나운서였다.(중략)
"그 뜨거웠던 한 달 동안 내가 한 일이라곤 화면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격렬한 공방전을 '구경'하는 것뿐이었다. 심야뉴스를 마치고 자정이 넘어 퇴근하는 길에 널려 있던 돌멩이와 병조각들, 그리고 그때까지 남아 숨을 막는 최루탄 냄새만이 내가 직접 느낀 팔십칠년의 유월이었다."
그는 당시 MBC 보도에 일종의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사력을 다해 제3자인 척했지만 돌멩이와 화염병은 우리를 향해 날아왔다. 우리에겐 방어 수단이 없었다. 모두가 알고 있는 꼭 한 가지의 방법이 있었지만 그것을 실천하기에는 용기가 부족했다. 그런 우리를 '87년 6월'은 용서하지 않았다."
30여년 뒤, 손석희는 언론인 중 가장 앞줄에서 박근혜 국정농단을 밝혀냈다. 손석희가 몸담고 있는 JTBC는 시민들로부터 가장 환영과 지지를 받는 방송사로 거듭났다. JTBC 기자들과 함께 공정방송을 이끌어낸 손석희의 '분투'가 없었다면, 박근혜와 최순실의 국정농단은 지금보다 덜 알려졌거나 늦게 알려졌을 것이다.
어느덧 예순을 넘긴 언론인 손석희의 '분투'는 어쩌면 30년 전 퇴근길에 널려 있던 돌멩이와 병조각들, 숨 막히는 최루탄 냄새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한때 시민들로부터 외면받았던 이 언론인은, 시간이 흘러 '모두가 알고 있는 꼭 한 가지의 방법'을 잊지 않고 정론 보도에 나서며 '87년 6월'에 용서를 구했다. 우리 사회에 아직 이런 언론인이 있다는 건 꽤나 멋지고 행복한 일이다.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그저 손석희의 JTBC 뉴스를 보면 되는 걸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말했다. "어떤 나라에서든 가장 중요한 직책은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직책은 시민인비다."
해시태그운동으로 언론을 깨워낸 시민이 제 목소리를 낼 때, 언론도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시민이 제 목소리를 낼 때, 우리는 신문지면과 방송화면에서 수많은 '손석희'들을 만날 수 있다. 수많은 '손석희'의 후예들은, 피의자 박근혜와 그를 둘러싼 한 줌의 무리들을 '아웃'시킬 것이다.]
등등;;; 이런, 너무 많이 인용했나요?(...)
저자분은 최근에는 <손석희 저널리즘>이라는 책을 내셨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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